School of Origins

힙합 음악은 이 세상에 존재해왔던 그 어떤 장르와도 다른 점이 있다면, 아티스트 (즉, 랩퍼)가 직접 자신의 가사로 자주적인 이야기를 자유롭게 풀어낸다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죠. 그 이야기의 유효성을 기준점으로 진짜와 가짜가 나뉘어지고, 팬들은 그러한 경험담과 개인적 견해들을 들으며 함께 공감하거나 가상으로나마 유대감을 쌓을 수 있죠.

힙합 음악이 대형 레이블과 기획사들이 손을 대는 시대가 도래하면서, 소속 아티스트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사실상 프로듀서를 비롯한 문지기(gatekeeper)의 개입으로 인해 간섭받고 여과되어버리는 경우도 많지만, 힙합/랩 음악은 여전히 직설적이고 표현력 짙은 가사로 대표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힙합 음악의 고유 특징 때문에 힙합 음악과 이 안에 포함된 아티스트들 (그리고 포함되지 않은 이들도)은 앓고 있습니다. 팬들은 마치 가족이라도 된 것처럼 가사에서 보여지는 아티스트들을 동감하고 이해함을 넘어서, 동정까지 하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죠.



힙합 음악과는 연관성 없는 커뮤니티 사이트들마저도 최근 전파를 타고 있는 <언프리티 랩스타>로 인해 과열된 현 상황을 목격할 수 있는데, 그 중 가장 돋보이는 것은 단연 타이미 (구.이비아)와 Jolly V 간의 대립 구도겠죠.



(E.Via - "Hey!" Music Video)


타이미는 2009년부터 이비아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며, “Shake It” “오빠 나 해도 돼?” 등 섹슈얼한 코드로 어필하며 상업적인 트랙들을 발표했었죠. 나름 속사포 랩덕분에 ‘여자 아웃사이더’ ‘여자 에미넴’’이라는 별명 등을 얻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소속사와의 계약 해지와 함께 정산 금액과 예명 상표권 등 복잡한 사건들을 겪었고, 이비아 대신 타이미(Tymee)라는 이름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후 아웃사이더의 아싸컴즈와 계약했고, 그 후 싱글 몇 트랙을 발매했지만 비록 기준은 애매모호할지는 몰라도 과연 예전의 그녀가 재계약 거부를 할 정도로 염증을 느꼈던 상업적인 음악과의 거리가 멀어졌는지는 의구심이 듭니다.



2013년 11월 말, Jolly V는 무료 싱글 “Bad Bitches”를 공개하며 도화선을 지폈습니다. 이 트랙으로 타이미는 물론 당시 AMOURETTE 크루를 새로 결성했떤 여성 랩퍼 KittiB까지 저격했고, 다수의 힙합 팬들은 언젠가는 누군가가 긁어주었어야할 간지러운 곳을 긁어줬다는 반응을 보였죠. 이 트랙으로 인해 타이미와 KittiB도 반격을 하는 곡을 공개하며 ‘여자 랩퍼 디스전’이라는 굵직한 사건으로 한국 힙합 역사의 한 켠에 새겨졌습니다.


시간이 흘러, 악명 높은 프로그램 <쇼미더머니 3>에서 타이미와 Jolly V는 재회를 하게 되었고, 방송의 특징상 이 둘을 대립 구도로 비췄죠. 하지만 비교적 활약이 저조했던 타이미는 “쇼미더머네.. 앤암 타이메..”라는 명언을 남겼을뿐 큰 임팩트를 새기지는 못 했죠.


(긴 대하소설을 읽은 기분이겠지만 힘내시길 바랍니다.)


비프(beef)로 인한 앙금이 남아있는 것도 모자라 이 두 랩퍼는 <쇼미더머니>에서도 극명한 차이를 보여줬기에, 이들의 관계는 더 불꽃 튀는 체제로 들어섰죠. 화해할 겨를도 없이, <쇼미더머니>의 스핀오프 프로그램인 <언프리티 랩스타>에 동반출연하며 라이벌 이상의 라이벌 관계를 선보이며, 서로 날 선 디스가 오가기도 하고 심지어 눈물을 보이기 까지 하죠. 도대체 왜 그러는걸까요


위에 이야기했던 커뮤니티 사이트나 포털 사이트 댓글을 보면 가관입니다. 

“굳이 힘든 과거사를 들춰내며까지 디스를 해야하나” “소속사 문제로 힘들었을텐데 그때 디스곡을 낸 것도 얌체 같다” “훨씬 나이 어린 후배 주제에 내 디스하면 나같아도 기분 나쁠듯” 등 지나치게 감정에 치우친 반응들이 십중팔구임을 볼 수 있습니다. 


비록 본 글에서 타이미를 불리하게 묘사한 것도 없잖아 있지만, 그 어느 편의 손을 들어주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디스(diss)에는 과거에 대한 조롱부터 외모 등이 담겨져있는게 어쩌면 당연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허나 그것으로만 충분하지 않고 그 안에도 재치와 기본적인 실력이 필수 조건이죠. 물론, Jolly V는 기본기도 탄탄하며 재치 있는 가사로 디스곡이나 방송을 풀어나갔음은 인정해야 합니다. 지금까지도 미국 본토에서 있어왔던 수많은 디스전을 봐도 서로의 명반이나 커리어를 깎아내리거나 ‘흑역사’를 들춰내기도 하고, 외모를 우스꽝스럽게 묘사하기도 하며, 심지어 성(性)적인 주제로 공격해온 트랙들이 비일비재한데, 왜 굳이 그들이 감정이 상한 것을 제 3자가 우려하고 있는지 의아합니다.


디스는 폭력을 대체하기 위해 생겨난 언어적 전쟁입니다. 악감정으로 인해 서로 기분이 상할 수는 있지만, 선을 넘어서 실제로 싸움으로 끌고오는 것은 숭고하지 못 한 행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그들을 부추기거나 과도하게 감정에 호소해서 편을 들어주는 대중의 반응도 일종의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격인듯 싶습니다.

개인적 바램으로는, 이 두 여성 랩퍼가 하루빨리 화해해서 좋은 시너지를 만들어냈으면 합니다.


(그 녀석.. 돌아왔으면 좋겠네요)


랩퍼들을 동정하지 맙시다.

“힙합으로는 살아남기 힘들었어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발라드 랩으로 돈을 벌 수 밖에 없었어요”라는 식의 어설픈 핑계를 하는 몇몇 아티스트들에게 동정 어린 눈빛과 고무적인 손길을 보내지 맙시다.


MBC <라디오스타>에 랩퍼 San E가 출연해서 JYP 엔터테인먼트에서 많은 작업물을 내놓지 못 했던 시절과 새 둥지를 틀며 끝내 상업적 성공을 극적으로 맛보게 되었고, 부모님께 명품 가방을 선물했다며 이야기를 했던 것을 본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인터넷 기사로도 마음 고생 끝내 부모님께 은혜를 갚은 효자인 것처럼 보도가 되었는데, 단면적으로는 참 잘 기쁜 소식이죠.

하지만, 이게 과연 올바른 것일까요.

아는 사람 얘기로 음원차트 순위권에 올라서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ROKHIPHOP가 공개한 랩퍼 화지 인터뷰 영상으로 이야기를 대신하려 합니다.

(2분 04초-3분 03초 구간!)


마지막으로, 오해의 소지가 있으니 밝힙니다. B-Free를 비롯한 여러 아티스트가 음원 스트리밍을 반대하며 CD나 음원 구매를 권하는 움직임은 ‘구걸’과는 엄연히 다릅니다. 창작자로서 그것에 대한 대가를 받지 못 하는 시스템에 도전하는 움직임은 정당한 것이며, 하루빨리 개선점을 찾지 못 하고 있는 이 체계가 오히려 아리송할 지경일뿐입니다. 

단지 “나 돈 벌어야 돼. 스트리밍하지 말고 음반 사!”식의 이기적인 강요는 되려 악질이라 봐도 무방하죠.


아티스트들을 동정하지 맙시다. 그저 응원합시다.